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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_ 그는 그랬어야 했다! 2017/09/04 (17:06) 조회(921) 관리자

택시운전사를 보고_ 그는 그랬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그 외국인 기자는 왜 끝내 그를 볼 수 없었을까?’에 대해 주변의 분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창피함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 행동이라 함은 주로 그 날 밤 그 독일 기자를 두고 혼자 광주를 벗어난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의견이 다르다. 그 분이 설사 그 곳을 벗어나 다시 돌아가지 않았더라도 그 분의 행동은 ‘창피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고? 그것이 그분에게 있어서, 그 순간 ‘최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11살짜리 딸! 부인의 마지막 항암 치료비로 마련한 택시로 먹여 살려야 할 그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서울로 오려할 때 그것을 막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도, 현지 택시기사도 도움을 주었다.

  가족은 한 개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런데 우리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그 개인의 가치가 때로 하찮은 것으로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가 평소에 하는 행동들(“그렇게 해서 못 받은 택시비만 모아도 집을 샀겠다” 혹은 돈 10만원 때문에 다른 운전사의 손님을 새치기 하는 행동)을 보면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위기에 처한 손님이나 사람들을 두고 홀로 그 곳을 떠나온 것은, 딸을 위해서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든 ‘신의’가 중요한 관객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 나쁜 행동이고, 독일 기자를 태우고 위험을 무릎 쓰고 도망쳐 나온 것은, 그 곳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대의’라고 하는 관객의 구미에 맞아서 옳은 행동이라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그 평범한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또 하나의 조망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의견에 대해 그러면 대한민국은 누가 구하냐고 할 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독립투사들이 자신의 가족만 생각했다면 독립운동을 안했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사람들은 주로 눈앞의 이익이나, 자신이 속한 소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소인배’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진정한 독립투사는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외연이 ‘가족’으로, 그리고 ‘나라’로 넓어진 상태가 아닐까. 그것이 또 하나의 자아실현의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가 독립을 해도 나의 마음이 다른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다면 나는 독립인(獨立人)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하고 산다. 우리는 주로 어느 순간의 행동이 ‘최상’의, ‘100점짜리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책을 한다. 세상이 바뀌고, 가치가 상대적인 이 세상에서 과연 ‘최상’의 ‘100점짜리’ 행동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저 계속 고민을 하는 그것이 가치롭지 않은가.

  아마, 우리가 그 택시 운전사에게 박수를 보내는 까닭은, 평범한 소시민이 어떻게 살아 낼지 순간순간 고민하며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만약 그가 순천에서 운전대를 돌리지 않았어도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가 만약 그랬다면 또 어디선가 딸을 위해 최선을 다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엄마 없고 의지할 데 없는 11살 딸아이의 아버지로서 사는 삶은 또 어떤가. 그 딸이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성공 신화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딸이 장애가 있어서 치료비를 대기 위해 아등바등 살면서도 사랑을 나누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운전대를 돌리는 선택을 했고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최선이었다. 딸의 구두를 사고, 딸과 통화를 하고, 딸을 버린 것이 아니라 더 크게 살리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 선택은 참 고귀했다.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살면, 최선의 삶이 연속되어 끝내 최상의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_다움심터 다움심리연구소 김금미